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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무선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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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도 부산항의 모습 1 1900년도 부산항의 모습 2 1900년도 부산항의 모습 3 >1900년도 부산항의 모습

우리나라에서 무선통신은 일본 체신성 소속의 해안국을 매개로 하여 선박국에 발착하는 일 및 기타 외국과의 무선전보를 대한제국 내의 각 전신국소에서 취급한 것이 처음이다. 일본과의 1908년 5월 5일 이후에 그 밖의 외국과는 같은 해 6월 이후 취급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무선전신 시설은 1910년 9월 대한제국 정부에서 월미도 무선전신소와 항로표시 시찰 및 세관감시선인 탁지소 소속의「광제호」에 장치한 것이 그 효시였다.

이에 앞서 노·일전쟁을 계기로 우리나라 영토 내에 일본 육해군이 군용으로 시설한 무선설비가 있기는 하였으나 정부통신기관이 정식으로 기획·설치한 것으로는 이것이 최초다. 대한제국 정부는 1881년 군비강화책으로 공채를 모집하면서까지 추진하였던 군함 도입계획이 좌절되자 1902년 말경 당시 한국해관 총세무사 브라운의 권유에 따라 도입한 군함이「양무호」였으나 운영에 곤란을 겪게 되자 새로운 조선발주를 계획하였다.

이 계획에 의하여 신조된 배가「광제호」인데 명목상 등대 순시 및 보급을 목적으로 일본의 가사끼 조선소에서 1904년 6월 15일 진수하여 시운전을 끝낸 것이다. 그후 1904년 12월 20일 대한제국 정부에 인도한 이 배는 총 톤수 1,056톤급 선박이었다. 정부는 광제호가 인천항에 도착하자 3인치 포 3문을 장착하여 해안경비함, 등대순시선 및 세관감시선 등 다목적으로 사용하였다. 1910년 6월 대한제국에서는 예비비 3만원을 지출하여 월미도(인천), 항문도, 목포(전라남도), 소청도(서해), 원산 등의 해안국과 광제호에 무선설비를 장착하려는 계획에 의하여 월미도와 당시로서는 최신설비를 장치한 광제호에 1910년 8월 15일 무선설비공사를 착공하여 1910년 9월 5일 완공하였다. 그 밖의 것은 일본해군이 1910년 9월부터 1911년 2월 사이에 시설을 완료하였다.

따라서 우리나라 최초의 무선시설은 대한제국 정부 스스로의 계획과 경비로서 이룩되었다고 볼 수 있겠으나 이 무선시설의 계획이 대한제국의 통치권을 일제가 실질적으로 장악하고 있었던 한일합방 직전에 이룩되었다는 점과 일본 정부의 권고에 의하여 일본인 기술자를 초빙할 계획을 하였다는 점, 그리고 한일합병으로 착공되지 못하였던 인천 월미도, 목포, 소청도, 항문도 등의 무선시설을 1910년 9월부터 1911년 2월까지 일본해군이 맡아서 준공하여 1898년 이래 일제가 대륙 진출의 군사·경제적 근거지로 삼았던 중국의 대련항의 항로와 연결하였다는 점들을 감안하여 보면 이는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한 것이었을 뿐 그 실체는 한국과 만주침략에 급급했던 일제가 제국주의 침략의 주요수단이 되는 선박의 항해안전을 도모하고자 기획·설치한 것으로 보아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월미도 무선시설은 황해를 항해하는 중국의 대련까지의 중계국이고 기타무선시설은 기상측, 등대통신, 해안경비, 해난구조 등의 특수업무에 사용되었을 뿐 일반공중통신업무는 취급하지 않았다. 월미도와 광제호의 무선시설은 상호간의 통신 외에 일본함선에 발착하는 관보만을 중계하였고 일본해군의 함선에 발수하는 전보에 대하여는 월미도 등대무선소에서 인천우편국과 연락전화에 의하여 취급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다 1926년에 경성무선전신국이 확장되면서 월미도 등대무선소는 그 업무를 경성무선국에 인계하고 폐지되었다. 일본해군의 월미도 무선전신소는 처음 대한제국 정부의 포대자리에 설치되었고 폐지 후에는 안테나와 국사만이 월미도 산정에 남아 있었으나 1932년 봄에 화재로 인하여 소실되고 말았다.

무선시설은 일본의 대륙침략이 활발해 짐에 따라 경성, 목포, 제주, 청진, 원산, 나진 무선국 등이 건설되었다. 192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에 대한 식민지 지배체제를 급속히 확립시켜 나갔다. 식량증산계획(1920∼1934년)을 세워 한반도를 식량공급 기지화하였을뿐만 아니라 관세제도를 철폐(1920년)하여 독점적인 상품시장을 강화하였고 회사령을 제정(1920년)하여 제1차 세계대전의 전쟁경기를 지속시키기 위한 투자 시장화를 획책하였다. 이와 같은 급격한 정책의 전환으로 많은 일본의 상사와 회사가 한반도에 진출함에 따라 종래의 통신시설로는 통신량의 증가를 감당할 수 없었다. 1919년 3·1 독립운동으로 그 당시의 통신시설이 크게 파괴되어 총독부는 유선시설을 확장하는 한편 1922년 3월에 체결된 산동철병협약으로 일본의 시베리아 출정군과 직접통신이 불필요하게 되자 경성육군무선전신소를 1923년 3월 31일 육군측으로부터 인계 받아 동년 4월 1일부터 경성우편국 용산전신분실로 개편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일반공중무선전신사무를 취급하였다. 공식개국에 앞서 1922년 12월 1일부터 그들은 육군과 협조하여 대일공중전보를 취급하였다는 것은 그 당시의 급박한 사정을 여실히 나타낸 것이라 하겠다.

일제는 모든 무선전신 및 무선전화에 의한 공중통신사업을 총독부의 관장 하에 두었다. 이는 통신사업을 총독부에서 경영한다는 대 원칙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무선통신이 지니는 특성을 감안하여 원활한 통신소통과 시설운영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였다. 따라서 공중통신을 주목적으로 하는 체신당국의 시설과 군용통신시설을 제외한 모든 무선시설 즉, 특정한 업무수행을 목적으로 하는 비 정부 전용통신시설은 시설에 앞서 체신당국의 허가를 얻어야 하였고 체신당국에서 규정한 설비와 통신종사자에 대한 엄격한 통제를 받아야만 하였다. 그리고 체신당국은 희소한 전파지원의 효율적인 이용과 혼신방지 및 불온전파의 근절 등을 위하여 비 정부 무선시설은 전용통신시설로 규정하고 이와 같은 비 정부 시설의 난립을 방지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경우에 한하여 그 시설을 허가하도록 하였다.

· 항해의 안전에 대비할 목적으로 선박 및 항공기에 시설하는 경우
· 동일인의 지정사업에 사용되는 선박 및 항공기 상호간에 그 사업을 위하여 이용할 목적으로 시설하는 경우
· 시설자와 전신관서와의 전보송수에 전용할 목적으로 전신·전화·무선전신전화에 의한 공중통신의 연락이 없는 육지 또는 선박 및 항공기에 시설하는 경우
· 전신·전화·무선전신전화에 의한 공중통신의 연락이 없으나 전항의 규정에 의함이 부적당한 육지 또는 선박 및 항공기간에 동일인의 특정사업에 이용할 목적으로 육지 또는 선박 및 항공기에 시설하는 경우
· 무선전신 또는 무선전화에 관한 실험에 전용할 목적으로 시설하는 경우 이것은 무선전신화의 학술적 연구 또는 기기에 관한 실험에 공여하는데 한하였다.
· 이상의 각 항 이외에 주무대신이 특별히 시설의 필요가 있다고 인정하는 경우

이와 같은 전용통신 시설은 사설무선전신·무선전화, 관청용 무선전신·무선전화, 방송용 사설무선전화로 구분되어 각각 그 목적 이외의 사용이 금지되었다. 또한 1930년 1월 1일 무선전신법을 개정하여 전파통제 및 통신단속권을 강화함과 동시에 무선통신의 보호를 위하여 고주파전류를 사용하는 시설을 규율하는 제도가 확립되었다. 또한 이 개정으로 공안을 방해하거나 풍속을 문란케 하는 무선통신의 제한, 무선시설에 대한 임시검사, 고주파이용설비에 대한 규제, 무료통신의 확대 등이 시행되었다.